저희 집은 흙수저 집안이었습니다. 다행히 밥을 굶지는 않았지만, 여유롭게 살지도 않았죠. 이런 재정 상태에 비해 저희 부모님은 인색하시지 않았습니다. 형제들 사이에서도 너그러운 편이였고, 저도 이런 가풍을 물려받아 생각보다 욕심 없이 자랐습니다. 그래도 당시 저에게 인심도 있었냐고 묻는다면, 전 아니라고 대답할 겁니다. 왜냐면 곳간이 텅텅 비었었거든요. 전 너그러움을 타고나지 못했습니다. 곳간이 빈 이상 누군가를 신경쓸 여력이 없었죠. 욕심도 환경에 맞게 거세당했다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입니다. 자기 한 명 건사하기도 바쁜데 남을 신경쓴다는건 오지랖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자기 입에 풀칠 좀 할 것 같다 싶으면 그제서야 주변을 돌아보게 됩니다. 저만 그런건 아닐거예요. 세상의 보편적인 모습이겠죠. 만약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을 돕고 위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분들이 천사 입니다. 슬프게도 저는 천사가 아니었고,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도 천사는 아니실 겁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이로운 일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이 바로 서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밑 빠진 독에 아무리 물 부어봐야 소용 없지 않겠습니까. 내가 그지 같으면 남 칭찬 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은 정말 사실입니다. 제가 곳간이 텅텅 비었을 때는 생각보다 인심이 적었습니다. 그 공간이 조금씩 채워지면서 저는 그동안 모르던 제 너그러운 성격을 발견하게 되었죠. 제 자신도 상당히 놀랐습니다. 거의 일생동안 발견 못했던 모습이었거든요.
저의 평판도 조금씩 바뀌어 갔습니다. 몇몇 지인들은 저를 엄청 여유롭고 좋은 사람으로 생각했죠. 막상 전 그대로였는데 말입니다. 제가 바뀐건 손해에 좀 더 관대해졌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는 곳간을 다시 채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곳간은 사람들이 보는 저의 정체성마저 바꿔버린 셈이죠. 저는 기분이 씁쓸했습니다. 진작에 이렇게 살았으면 좋지 않았을까요. 삶의 지혜를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겁니다. 곳간에서 인심 나는 이유는 다시 채울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는 걸.
인간이 열등감을 갖고 너그럽지 못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조상에게 물려받은 DNA인데 우리가 어쩔 수 있겠습니까. 안 그러면 정신에 문제 있는 거죠. 지극히 정상입니다. 대신 그런 마음을 모아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아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어떨까요. "인간의 열등감은 동기부여의 원천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곳간이 부족해서 자신이 인색해 진다고 자기비하를 하지 맙시다. 그건 당연한 겁니다. 대신 그것을 외부로도 표출하지는 말아야 하고, 발전을 멈춘 채 가만히 있어서도 안 됩니다. 곳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인색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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